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틴 보어만 (문단 편집) == 개요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skepticism-images.s3-website-us-east-1.amazonaws.com/Bormann-Party-25.2.39.jpg|width=100%]]}}} ||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고급 당료로 나치당의 당수부장[* Parteikanzlei, 영어로는 Party Chancellery, 부총통으로 번역되기도 한다.]과 [[아돌프 히틀러]]의 개인 비서를 겸임했다. [[SA|돌격대]]와 [[슈츠슈타펠|친위대]]에서도 [[대장(계급)|대장]]까지 승진했다. 시간이 갈수록 아돌프 히틀러를 구워삶아 히틀러의 최측근이 되었다. 별명은 '''갈색의 배후자.'''[* The Brown Eminence. 바로 위 사진에도 나와있듯이 언제나 갈색 제복만 입고 다녀서 붙여진 별명으로, 프랑스의 왕 [[루이 13세]] 막후에서 권력의 실세였던 [[리슐리외]] 추기경의 별명이었던 The Red Eminence를 풍자한 것이다. 실제로 말년의 히틀러는 보어만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곧이들을 정도로 그의 말에 휘둘렸다.] 신장은 170cm.[* 아예 어떤 역사학자들은 이 자에 대해 '''나치의 라스푸틴'''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루돌프 헤스]]의 부하로 총통비서(Sekretär des Führers)가 되어서 히틀러의 사생활과 축재를 처리해주고, 히틀러[* 원래 좀 괴팍하고 [[니트족|니트]]적인 성격이라 공식적인 문서로 행정을 지휘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의 즉흥적이고 갑작스러운 지시사항을 문서화하는 일을 맡아하면서 급격히 떠올랐다. 상관이던 헤스의 실각후 히틀러를 대리하여 나치당 운영을 담당했다. 나치 후반기로 가면서 [[헤르만 괴링]]이나 [[하인리히 힘러]]보다도 더 히틀러의 신임을 받았고, 잠재적 후계자로서 이들과 권력투쟁을 벌였다. 전시에는 나치당만 아니라 정부, 군에까지 개입하여 히틀러 다음으로 권력이 쎘던 인물이다. 다만 직접적인 권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히틀러의 성향을 잘 이용해서 어떤 사안에 대해서 그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거나 사안을 히틀러에게 접하기 못하게 중간에서 방해를 하는 방법을 사용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 그러나 나치가 멸망한 [[베를린 포위전]] 이후 행적이 묘연했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는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생존설이 모락모락 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후에 유골이 발견되었고, 현재는 베를린의 전투 막바지에 총통 벙커를 나와 소련군 포위망 돌파를 시도하다가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그의 최후에 관해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 유골이 보어만의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돌면서 생존설이 다시 피어났었으나 가족을 통해 유전자 감식으로 보어만의 유골임이 입증되면서 베를린 탈출 중 죽었다는 것에 쐐기를 박았다. 히틀러 나치정권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두른 데 비해, 인지도가 많이 떨어진다. 괴링처럼 공식 2인자도 아니고 힘러나 괴벨스에 비하면 언론에 보도가 덜 된 [[비선]]이기 때문인 듯.[* 영화 '[[작전명 발키리]]'에서 톰 크루즈가 히틀러한테 가서 발키리 작전에 대해 결제를 받으려고 할 때 히틀러와 같이 있었던 사람이 5명 있었다. 괴벨스, 힘러, 괴링, 카이텔은 알아보더라도 갈색 제복 입은 사람은 '엥? 누구지? 엑스트라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정도로 인지도가 없는 '비공식 실세'가 마르틴 보어만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